앞에서 언급한 담화 (에로스의 변신들(01) 참조)가 에로스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에로스의 이 족보라는 것이 에로스의 본성에 대해 벌써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메티스 제우스
(신중, 배반, 불성실, (전지 전능, 신들의 신)
지성, 술책의 신)
∨
포로스 페니아
(길, 여정, 행로 (결핍, 가난의 신)
충족, 자원의 신)
∨
에로스 (사랑, 욕망)
이것이 에로스의 탄생의 족보라면 이 에로스는 본질적으로 결핍의 에로스로서 그 결핍을 충족하려는 욕망을 본능으로서 잠재적으로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에로스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디오티마의 입을 통해 에로스의 본성에 대해 말한다.
”이로부터 에로스는 ‘충족’과 ‘결핍’의 아들인 만큼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던 셈이죠. 우선 먼저 그는 가난해서 항상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아름답거나 상냥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거칠고 더러웠습니다. 신발도 신지 않고 집도 없이 언제나 딱딱한 땅바닥, 야외, 문간이나 길바닥에서 에서 잠들었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머니로부터는 영원한 궁핍과 가난 속에서 살아야하는 본성을 이어받았던 것이죠. 반면에 아버지로부터는, 언제나 아름답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본성을 이어받았죠. 그는 용감하고 대담하고 집요했으며 언제나 무엇인가를 추적하고 계략을 꾸미고 항상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매혹적인 마술사이며 철학자였습니다. 그 자신은 불사의 존재도 아니었으며 그 반대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 사이에 생명을 꽃피우는 풍요의 상태에 있는 한 살아있는 것이지만 일단 충족하고 나면 곧바로 죽어버린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으로 다시 소생하곤 했죠. 그는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그가 손에 넣은 모든 것은 곧바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에로스는 결코 결핍이나 충족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플라톤,『향연』,203 de)
형이상학적으로는 무엇인가가 결핍되어있다는 것은 항시 어떤 것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 있어서 ‘결핍’은 이 결핍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욕망하게 됨으로서 이를 얻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하나의 미덕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페니아(결핍, 가난, 부족함, 채워지지 않음)의 아들로서 에로스는 본능적으로 결핍의 상태로서 존재한다. 이것이 아버지인 포로스(행로, 행진, 수행)로부터 물려받은 자유로운 정신에 의해서 풍요 또는 충족을 향해 나아가는 본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사랑의 신’이라는 에로스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실제로 아무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본성으로서의 사랑 그 자체는 현재 결핍되어있는 무엇 혹은 ‘누구’에 대한 사랑이다.
이점에 관해서는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이 입을 빌려 동의를 표하고있다. 문제는 그 대상이 무엇 또는 어떤 것이냐에 달려있다. 『향연』에서는 두 개의 에로스를 서로 대립시키고 있다. 그가 파우사니아스의 입을 통해 하는 이야기에서는 분명 에로스가 세속적이며 육체의 욕망에 탐닉하는 아프로디테 판데모스(지상의 아프로디테)와 세계의 영혼으로서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천상의 아프로디테)의 아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체에만 의존하여 육체만을 탐닉하는 저속한 에로스가 있는가 하면 영혼으로부터 발원하여 그 곳에 머무르는 신성한 에로스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 에로스의 성격을 모두 띠고 있는 것인가? 즉 육체로부터는 생물학적인 기관들을 빌려오는 에로스는 이 기관들을 생물학적 목적에서 분리시켜 육체적 쾌락만을 배타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체계에 속하는 ‘육체의 에로스’로서의 성격이 있는가 하면, 정신으로부터는 육체를 그 야수성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하여 규율과 예술적 유연성과 유머를 추구하는 ‘정신의 에로스’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조금 더 플라톤을 따라가보자.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에게 묻는다.
“... 그렇다면 도대체 에로스는 무엇일까요, 소멸하는 존재인가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소멸하는 것과 영생을 누리는 것의 중간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디오티마?”
“그것은 다이몬입니다. 그것은 소멸하는 것과 영생하는 것, 인간과 신의 중개자로서 무지와 지혜의 중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에 관한 것들을 신에게 매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한 편으로는 기도와 제사를, 다른 한 편으로는 신명(神命)과 보상(補償)의 중간에 있으면서 그 공간을 채워줌으로, 그것이 결합되어 모든 것은 완전한 통일체를 이루는 것입니다”.(203 e)
그에게는 “에로스는 하나의 ‘전체’와 개인을 결합시켜주는 통로인 것이다.” (『향연』,204) 이 시점에서 플라톤의 에로스가 갖는 의미는 좀더 분명해진다. 즉 본능에 의해서 충족을 지향하는 에로스가 궁극적으로 집착해야하는 것이 하나의 전체 즉 지고의 진리라는 점에서 원초적 合一과 충만을 전제로 한 고대 그리스의 신비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된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충동적 정욕(情欲)과, 육체와 결합되지 않은 불멸의 순수한 이성(理性)으로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떄 이성은 매우 순수한 것으로서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전 지선(至善)의 실체계인 이데아(Idea)를 직관할 수 없으나,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들어감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고 하였다. 이 잊었던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에로스(Eros)이며, 현상을 보고 그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여 인식하는 것이 곧 진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인 부분의 덕이 지혜(Sophia)이며, 정욕적인 부분의 덕을 절제(Sophrosyne), 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氣槪 : Thymoeides)의 덕을 용기라고 하였다. 정의(定義 : Dikaiosyne)란 모든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의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나 로고스의 개념자체도 바로 에로스로부터 유래한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에로스라는 개념이 없으면 플라톤 철학도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에로스로부터 플라톤 철학의 모든 관념들이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에로스는 소멸하는 존재도 불멸하는 존재도 아니며, 그는 불멸의 존재로서의 신과 소멸해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중간적 존재인 다이몬으로서 성적 본능과 욕망의 저편 사이를 중개해주는 중개자인 셈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인간에게 일어난 일들을 신에게 보고하고 전달하고 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인간에게 전해주고 해석해주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불행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원초적 결별을 바로 이 중개자에 의해서 마감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는 이 중개자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회복하여 저 천상의 신성과 다시 만나게 한다는 것이다.
디오티마의 이야기에 이르러서 플라톤은 성적 욕망과 욕망의 저편 사이의 중개자로서의 에로스를 상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플라톤은 원래 에로스를 철학적 개념으로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에로스가 성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에로스가 지닌 성적인 측면에서의 충족을 향한 욕망 자체는 “이 사랑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수태의 욕망으로서 인간 각자가 지니고 있는 영원불멸의 욕망이 표출된 것일 뿐”이라고 한다. “영원불멸할 수밖에 없는 자는 본질적으로 어떻게든 영속하고 불멸하기를 바랄 것이며, 이는 우리가 가진 수단을 고려해 볼 때 오래된 것을 대신할 새로운 것을 대신할 수 있도록 수태를 통하는 것이겠지요.”.(207) 소멸하는 모든 것은 그 본성에 의해서 영원불멸하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오직 생식(生殖)에 의해 낡은 것 대신 새로운 것을 남김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수태라는 것은 시간이 영속하듯이 인간의 불멸성의 이미지이지라는 것이다. 성이라는 것도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결핍의 상태를 해소시켜 종족보존이라는 충족의 상태를 바라는 욕구의 실현으로서는 이 성은 절대의 선(善)을 다다르고자하는 에로스의 차원 높은 충동적 생명력의 원동력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플라톤의 에로스란 모든 실재를 통합할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비젼에 다다르기 위해서 인간 존재의 한계조건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에로스가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적의미는 플라톤의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대신 그는 “에로스의 그런 성격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달리 말하자면 에로스적 삶의 올바른 과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언급한다. 육체의 미에 대한 추구에서 영혼의 미에 대한 추구로 승화되고, 마침내 미 자체의 관조에 도달하는 것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에로스가 사랑하는 것은 이러 이러한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미 그 자체다. “이러 이러한 어떤 존재 속에 깃든 미란 또 다른 어떤 존재 속에 있는 미의 자매품의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형태 속에 내재하는 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모든 육체 속에 내재하는 미는 동일한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광기에서 오는 공허를 채우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랍니다” (210). 따라서 사랑이라는 것에 의해서 우리는 ‘미’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이며 이에 비해서 아름다운 육체나 영혼은 이 미라는 관념의 반영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아름다운 육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을 모든 육체의 미(美), 심령상의 미, 직업이나 제도의 미, 나아가서는 교육이나 예술, 철학상의 미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승화시켜, 마침내는 미 그 자체인 이데아의 인식에까지 이르는 데 에로스의 참뜻이 있다고 한다.
『향연』에서 서술한 에로스론은 그 내용에 있어서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견해이며 어디가 향연에 참여한 대화자들의 생각인지를 구별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에서 논의할 주제가 아니므로 일단 젖혀둔 채로 전반적인 내용에 의해 정리하면 플라톤이 중시한 에로스는 ‘천상’의 에로스로서 영혼으로부터 발원하여 영혼에 집착하는 에로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플라톤이 육체의 탐닉으로서의 에로스가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성’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있다라기보다는 반대로 육체에 의존하고 육체의 탐닉에 빠지는 ‘지상’의 에로스의 존재를 플라톤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단지 플라톤은 신화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성’적 의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상의 에로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플라톤의 에로스론은 결국 플라톤 철학의 대강의 틀을 형성하고 있는 이원론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즉 그는 육체의 에로스, 혹은 지상의 에로스와 천상의 에로스, 혹은 미의 에로스의 성격을 분리하고 있으면서도 지상의 에로스에서 성적 의미를 제거하여 지상의 에로스를 천상의 에로스에 접근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에로스의 이와 같은 개념은 플로티노스(205?~270) 를 매개로해서 신플라톤주의에 의해서 계승된다. 신플라톤주의에 의하면, '일자(一者)'가 일체 존재 사물의 원천이다. 일자는 그 존재의 충일(充溢)에 의하여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그것 이외의 존재사물을 그것의 밖에서 창출한다. 이것이 '일출(溢出)' 또는 '유출(流出)'이라 불리는 유출설(流出說)이다. 이때에 일자 그 자체는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아니한다. 존재의 작용기능을 자기 이외의 것을 낳는 창조의 작용․기능이라고 파악한 이 직관은 그리스철학이 도달한 가장 아름다운 직관의 하나이다. 만물의 본원인 ꡐ일자(一者)ꡑ로부터 모든 실재가 계층적으로 ꡐ유출ꡑ하여, 보다 낮은 계층은 그 상위의 것을 모방하며, 보다 복잡하고 불완전하다. 또 만물은 ꡐ관조(觀照)ꡑ에 의해 일자에 계층적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쓴다. 이 상하 두 방향에의 운동이 실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이 운동에 의해 감각적인 것을 벗어나 일자로 향하며, 이것과의 직접적인 합일, 즉 ꡐ탈아(脫我)ꡑ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희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런 맥락 속에서 그는 에로스에 관해서 『향연』을 근거로해서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불가분성에 대해서 말한다. “... 모든 영혼은 하나의 아프로디테다. [...] 본성에 의해서 영혼은 신을 지향하며 신과 결합하기를 바란다”. (『엔네아데스 Enneades』(9편이라는 뜻).
.... 계속, memo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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