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01-에로스론

에로스의 변신들(01)

카르미나 2006. 12. 30. 08:05
 

   [...이렇듯] 에로스의 변신들은 너무나 많다. 수많은 고대의 작가와 신화가 이 인물, 혹은 신 또는 신성의 탄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예컨대 밀교(密敎)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오르페우스교의 ‘천지개벽설’에서는 에로스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원초적인 하나의 힘이다. 아리스토파네스가 『새(鳥)』에서 피력한 개벽설에서는 오르페우스교의적인 영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태초에는 카오스[혼돈} 과 밤 그리고 어둠인 에레보스와 거대한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 뿐이었답니다. 아직은 대지도 공기도 하늘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맨 먼저 검은 날개를 펼친 밤이 에레보스의 무한한 가슴에 수정되지 않은 알 하나를 낳았답니다. 그리고 그 알로부터 계절의 정원에서 등에 반짝이는 황금 날개를 지닌 에로스가 태어났던 것이지요. 에로스는 바람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밤을 거대한 타르타로스의 품에 날개를 펼친 카오스와 결합시켜 우리 인간을 태어나개하였습니다. 에로스가 이 모든 요소들을 서로 결합시키기 이전에는 불멸하는 인종은 존재하지 않았답니다. 에로스가 이들을 서로서로 결합시켜나감에 따라서 하늘과 대양, 대지가 생겨나고 행복한 불멸하는 신들도 태어나게된 것이랍니다”

                                                                      아리스토파네스 『새』


   그러니까, 오랜 옛날, 밤이 투명한 알, 그러니까 무정란(無精卵) 하나를 암흑의 밑바닥에 떨어뜨려 여기에서 황금의 날개를 가진 에로스가 태어나 모든 것을 뒤섞어 우주와 신들을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에로스는 성적 결합 이전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유일한 ‘하나’다. 이러한 해석은 모든 인간과 만물이 각기 차이가 있어 서로 구별되는,  즉 차별화된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원초적 합일(合一)과 충만을 바라는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 하나인 에로스가 곧 삼라만상의 근원으로서 남자와 여자, 하나와 다수라는 모든 대립을 통합하고 합일시키는 유일한 힘인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신화 또는 전설 중에서도 플라톤의 『향연』속의 이야기는 단연 흥미롭다. 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 총 일곱 명의 명사들이 에로스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는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차례가 되었다.    

 

   “예전에는 인간의 본질이 요즘과는 달랐답니다. 전혀 달랐지요. 우선 인간은 요즘처럼 두 종류가 아니라 세 종류가 있었답니다. 남성과 여성이 있었고 이 두 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세 번째 성이 있었답니다. [...] 그는  앤드로지니[남녀양성]라고 불리었답니다. .[...]  앤드로지니는 둥글게 생긴 두 몸체와 원 모양의 허리, 그리고 옆구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네 개의 팔과 역시 같은 수의 다리, 완전하게 닮은 두 개의 얼굴[...], 두 개의 성기 등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제우스가 뿔을 말리기 위해서 자르듯이 앤드로지니들을 둘로 잘라버렸습니다. [...] 일단 일이 이렇게 되자, 그 이후로 각 반 쪽은 다른 반 쪽을 열렬히 원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 둘이 서로 만나면 다시 합쳐지고 싶은 마음에서 서로를 감싸고 꼭 껴안아서 아무 것도 아무 것도 하려고도 하지 않고 생기 없이 굶어서 죽으려고만 하였죠. 왜냐하면 다른 반 쪽을 취하지 않고는 바라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까닭이었답니다. 그래서 가련한 생각이 들어서 제우스는 궁여지책으로 그들의 생식기를 신체의 앞 쪽으로 옮겨 놓았답니다. 그때까지는 이것이 신체의 뒤 쪽에 있었으므로 짝짓기를 할 수가 없었죠.[...] 이후로는 서로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들에게 생겨났지요. 이것이 인간들에게 그 원초적 본능을 부활시켰고 인간의 본성이라는 재앙을 다시 가져온 것이었답니다. 우리들 모두는 사실 하나의 전체에서 분리된 인간의 반쪽이랍니다.”

                                                                (플라톤, 『향연』,189-191 d)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향연』이라는 책은 이천 오백 년 전에 살았던 플라톤의 저작이며 더욱이 이 때의 저작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필사로 전해져왔기 때문에 어느 부분까지가 원 저자의 글이며 또 후대에 필사자들이 추가한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의 경우에서도 추측되는 바와 같이 그러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부분이 어디인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불가능할 뿐더러 『대화』의 특성상 이것이 연회에 참석한 명사들의 생각인지 아니면 플라톤 자신의 견해인지 확인이 어렵다.

  

   인용한 부분은 사랑과 사랑의 탄생 그리고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아리스토파네스, 혹은 플라톤이 아리스토파네스의 입을 통해 하는 이야기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앤드로지니의 신화다. 좀더 분명하게 말하다면 오히려 인간의 탄생에 대한  아리스토 파네스의 창세기, 혹은 플라톤의 창세기인 셈이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누구의 이야기이던지 간에 앞서 언급한 천지 개벽설과 맥이 닿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호사가들은 이 부분이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는가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 가운데 하나라고도 한다. 심지어는 동성 결혼을 합법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자들이 플라톤도 남성이나 여성 동성애, 그리고 이들의 결합을 인정했던 것이라고  그들의 논리의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도착(倒錯)이 아니라고 주장할 만할 근거도 논리도 궁색한 마당에 부리는 억지를 이해할 만도 하다. 아무튼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플라톤 철학의 구체적 내용으로 보더라도 인간의 탄생에 관한 것 같은, 고유한 의미에 있어서의 존재론적 문제, 즉 인간의 궁극적 근원을 탐구하는 것은 그의 철학의 핵심적 내용도 아니고 목적도 아니었다는 점에 있어서도 그렇고,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을 견지한 그의 철학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도 이것이 플라톤적 사고의 중심 흐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양보해서 이것이 플라톤의 견해라 할 지라도, 『향연』의 전체적 구조로 보아 이 부분은 도입 부분에 해당하므로 이야기꾼으로서의 플라톤의 재능이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하나의 구실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신화는,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단 무의식의 원형’중의 가장 중요한 하나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우리 모두는 “다른 존재의 상징”이며, 저 먼 옛적부터  자신의 또 다른 반쪽인  상대편을 갈구하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원초적 본능들을 함께 모아주는 것이며, 둘이서 하나의 존재를 만들려고 하는 욕망이기에 인간이라는 종족의 구원인 것이다.(191 d).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면, 사랑은 “우리들의 원초적 본능이며 우리는 그 사랑의 유일한 작품의 일부이며, 그러기에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결합을 갈망하고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향연』192 e). 

 

   이 부분은 사실은 분위기를 띄우는 워밍업에 불과하고 플라톤이 본래 이끌어 내고자 했던 것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의 차례가 되자 소크라테스는 맨티나이에서 온 디오티마라는 무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이야기한다.

 

   “ 아프로디테가 태어났을 때, 신들은 축하연을 열었는데, 이 연회에 메티스의 아들은 포로스도 참석을 했답니다.  이들이 저녁을 막 끝낼 무렵에 페니아가 뛰어 들어와 자기에게도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서 문을 붙잡고 서있었답니다. 이 사이에 포로스는 넥타를 마시고 취해서-당시에는 아직 술이 없었지요- 제우스의 정원으로 나가서 잠들어 버렸답니다. 페니아는 아직 자신의 요구가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포로스 자신이 자기의 요구를  채워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포로스 곁에 가서 누웠답니다. 이렇게 해서 에로스를 잉태하게 되었지요. 아프로디테가 태어날 바로 그날 잉태되었고 본성이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터에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에로스는 이 여신의 추종자와 동반자가 되었던 것이지요.”

                                                                    (플라톤,『향연』,203 bc)

 

   에로스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에로스의 이 족보라는 것이  에로스의 본성에 대해  벌써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