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아트

구스타프 클림트

카르미나 2009. 2. 6. 04:19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 7,14 - 1918,2 ,6) 는 오스티리아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이며 비엔나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구스타프 클림트  1884

 

 

 

         

 

   -- 생에

  

   금은세공사인 아버지 에른스트 클림트와 리릭가수였던 어머니 안나 핀스터 사이에 태어났다. 형제는 모두 일곱이었다. 1876부터 1883년까지 비엔나의 장식예술 학교에서 학습하였는데, 페르디난드 로프베르제가 그의 스승이었다.

 

   1879년부터 1891년까지, 세공사였던 동생 에른스트, 프란츠 마치와 함께 한스 마카트의 팀에 장식가로서 참여했다. 이들은 이 팀의 이름을 “예술가회사”라고 붙였다. 특히 이 회사는 신고전주의적 스타일의 수많은 프레스코, 풍자조각, 문장과 세밀한 초상화로 명망이 높았다. 클림트는 그 예술가적 재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1888년 당시 황제인 프랑스와-조셉1세의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4년 후, 마치가 죽자 이 팀은 해체되었다.

 

   1892년 동생이 죽자 이제 그가 집안을 보살펴야 했다. 역시 세상은 익숙한 것에 익숙하여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화시켜 아카데미즘과의 예술적 층돌을 누그러뜨려야만 했다. 게다가 장관은 그를 예술학술원 의장에 임명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1917년 그는 뮌헨과 비엔나의 학술원 종신회원으로 임명된다.

 

 

 

                                                                                                                                                                  <주디스 1> 

 

 

                                                                                                             <키스>

 

 

 

                                                                                                                                       <베토벤 프리즈 소 벽화 장식의 일부>

 

   --경향

    

   한마디로 정의해야 한다면 아카데미즘과의 결별이다. 그의 첫 번째 주문 작품이라고 볼수 있는 쿤스티스토리치 박물관의 중앙계단위의 펜던티브(삼각홍예)는 오나전히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일본식 판화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보여준다. 1897년 다른 세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아카데미즘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해당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다.이 시기의 그의 작품들은 철학이나, 의학 또는 법학등, 비엔나 대학의 주요 학과를 예시하는 우의적 회화들이 많다.

 

   이 작품들은 비평가들의 기분을 언짢게 한 것들이었지만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 작품은 1945년 나찌에 의해 파괴되어버렸다.

 

   1902년 루드비히 반 베토벤을 기리는 거대한 프레스코를 그렸는데 이 소벽화들은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반면 오귀스트 로뎅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1907년 젊은 에르곤 살레와 만나게되었는데 살레는 클림트를 모델이자 스승으로 생각하였다. 평생 동안 독신으로 어머니와 누이들과 함께 살았는데 정부는 많았다. 특히 1890년대 초에 만난 에밀리 플뢰즈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다. 아무튼 복잡한(?) 여자 관계로부터 14명의 비공식적인 자녀들이 있다.

 

 

   --- 스타일과 주제

 

   그의 주 작업은 크게 보면 역시 회화, 프레스코, 크로키, 기타 예술품을 포함한 것들이다. 스타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과장된 디테일, 풍부한 장식, 화려한 색체가 특징적이다. 여기에 정확한 초상화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자주 남자의 생식기의 형태를 사용하였는다.(<주디스 1>, <키스>(두개는 그림 참조), 특히 <다나에 (1907)).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는 팜므 파탈로 의인화될 수 있는 강한 팔자의 여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림트는 회화에 금을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마도 라벤나의 비잔틴 사원을 보고 나서 생각해 낸 것으로 추측 된다(<주디스1> 참조).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다. 예술사가들은 고대 그리스, 미노아와 이집트 예술 작품, 그리고 세공사인 알브레트 뒤레와 중세 유럽회화 심지어는 일본의 림파까지를 언급하기도 한다.

 

                                                                                                                                         2009.01, 메모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