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낭의 장례식, 1849,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
ㅡ돌깨는 사람들ㅡ, 1849, 소실
ㅡ화가의 아틀리에ㅡ, 1855, 오르세이 미술관
ㅡ노르망디 해변- 워싱톤 내셔날 갤르리
5. <태초(세계의 기원)>, 1866, 오르세이 미술관 , (차마 올릴 수 없음,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합니다
)
구스타프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
앗시리아와 헝가리 계의 후예답게 대주 불사형, 과시, 허영으로 대변될 수 있는 다소간 과장된 프로필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보들레르도 편지에서 이러한 과도한 성향을 애석해 하기도 했지만 그의 편지는 쿠르베의 회화에 대해서는 민감에 특징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쿠르베 역시 회화에 있어서 만큼은 이러한 격렬한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경 가까운 프링스콩테주, 오르낭 출생. 1840년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연구를 위해 파리로 나왔으나 얼마 후 화가를 지망하여 화숙(畵塾)에 다니며 회화습작에 몰두하는 한편 루부르미술관이나 스페인과 네덜란드파의 거장들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낸 향사의 기억에 몰두하여 이와 관련된 여러 개의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그중 <오르낭의 장례식>(1849)은 화단에서 그 이채성을 인정받았으나 평론을 양분하는 물의를 일으켰다. 지나치게 실경(實景) 묘사에 치우쳐 불경스럽다는 비난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돌 깨는 사람들>(1849),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노작 <화가의 아틀리에>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진다. 이 작품의 출품을 거절당하자 몽테뉴가에 손수 전시관을 짓고 입구에 “사실주의” 라는 큰 간판을 걸고서, 이 작품을 비롯한 40여 점의 자작품을 전시하여 자신의 예술상 입장을 도전적으로 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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