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나리편의 첫 순서는 <산소리>다. 순서상 왜 <설국>이 아니냐는 질문은 물론 가능하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이며 지금 다시 읽는 책이 <설국>이 아니라 <산소리> 이기 때문이다. 추후 <설국>도 되돌아 볼 것이다.
<산 소리> 는 1948년 연재 시작, 1954년 완결되었으니 야스나라의 후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야스나리가 말년에 기거했던 가마쿠라 하세 저택에서 쓴 작품이다. 저택 바로 옆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감승신사가 있고, 신사 뒤편으로 야트막한 산이 있다.
그러나 패전 후 발표된 일본의 근대 소설 중 최고라는 찬사가 있다. 탐미 문학의 상징이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소름 끼칠 정도로 기묘하고 아름답다”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한적한 산골 마을의 정경과 미묘한 계절의 변화를 섬세한 묘사와 농익은 문장으로 포착해낸 것은 이 작품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출간된 지 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후 일본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산소리》는 현지에서는 “일본의 전통적 감성을 근대적 자아의 고독감을 통해 표현”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방인인 우리에게 일본의 전통적 감상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잠시 졎혀 놓도록 하자.
주인공은 62세의 노인 오가타 신고다.
"그리고 문득 신고에게 산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없다. 달은 보름달에 가깝게 밝지만, 작은 산 위를 수놓은 나무들의 윤곽은 습한 밤 기운으로 희미해져 있었다. 그러나 바람에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다 (…) 신고는 바닷소리인가 의심도 했지만 역시 산소리였다. 먼 바람소리와도 닮았지만 땅울림과도 닮은 저력이 있었다 (…) 소리가 멎은 뒤에 신고는 비로소 공포에 휩쓸렸다. 임종을 알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한이 났다 (…) 악귀가 산을 울리고 간 것처럼 여겨졌다." (p.20)
일본에서 '산소리'는 죽기 전에만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은 한 노인을 주인공으로 소멸, 즉 노화와 죽음에 대해 탐구한다. 이야기의 기본 틀에는 야스나리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욕망, 죽음, 허무, 탐미 같은 정서들이 밑바탕에 스며들어 있다.
신고는 어느 날 넥타이를 매다가 깜짝 놀란다. 40년 동안 해오던 넥타이 매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신고는 온몸의 기관들이 낡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는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에게만 들린다는 '산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가족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야스코는 비교적 젊은 편이었다. 연상의 아내로 보이지 않았다.
신고는 소년 시절부터 원래 지금의 부인인 야스코가 아닌 야스코의 언니를 좋아했었다. (p.32) 언니는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주변이 환해질 정도로 미인이었다. 처형은 뛰어난 미모로 미남을 만나 결혼했지만 일직 병사했다. 야스코는 죽은 언니네 집에 들어가 조카를 돌보며 살림을 맡았다. 일본 전통에 따라 형부와 결혼할 줄 알았지만, 형부는 일만 시켰다. 두 자매는 자매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외모도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다. 신고는 야스코가 가정에 헌신적인 것을 알고 언니가 죽자 야스코와 결혼했다. 굳이 말하자면 실리를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우상이었던 언니의 그림자가 작용한 것인지... 부부지만 사랑은 없는 사이다. 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이 한 명씩 있다. (p. 97참조)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딸인 후사코는 어머니 야스코를 빼닮았는데 이혼하고 2명의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들어와서 산다. 후사코는 자신의 불행이 아버지가 사랑을 쏟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싱고를 원망한다. 아들 슈이치는 전쟁에서 돌아온 후 성격이 난폭해졌고 전쟁 과부가 된 여자와 바람을 피워 아이를 낳고 며느리도 그 사실을 알고 복수로 낙태한다. 학교에 다니는 소녀들은 중절 수술을 하고 사위는 마약 밀매를 하고 알콜 중독자가 된다. - 일본의 전후 세대와 세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야스나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신.구 세대의 갈등까지는 아니더라도 신 세대에 대한 불만스런 시각은 또다른 소설 <명인> ( 이 것은 조일신문 바둑 전문 기자로 일할 때 경험을 기록한 소설이다. 프랑스에서 연극으로 공연 된 적도 있을 만큼 잘 알려진 소설이다)에 잘 드러나 있다.
제 1장은 며느리 기쿠코에 대한 언급이 많다.
"기쿠코가 시집왔을 때, 어깨를 흔들지 않고 아름답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선한 교태가 분명하게 느껴졌다." (p 32) -- 모르겠다 이부분은 내가 일본어를 모르니 원어로 읽을 수도 없고 .... 앞 부분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다소곳한 동작이 신고 그러니까 시아버지의 눈에는 얌전하게 보였다는 뜻인지.... 그런데 뒷 부분, '신선한 교태" 은 아무래도 좀 애매하다. 일본인의 다소간 요상한(?) 성적 판타지가 드러나 보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다음 바로 이어지는
"회리호리한 살결이 흰 그녀를 보면서 신고는 야스코의 언니를 떠올렸다."
한국의 시아버지들은 며느리 살결까지 신경쓰며 보지는 않을 것이다. 모르겠다 신세대 시아버지라면...
아무튼 기쿠코와 처형을 동일시하는 것일까?
"기쿠코까 며느리로 들어와 신고의 추억에 번개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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