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r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Song」, 1862, Christina Georgina Rossetti (5 December 1830 1894) in 고블린 마켓’.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그대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오.
내 머리맡에 그대여 장미도
그늘진 사이프러스도 심지 마오.
푸른 풀이 나를 덮어
소나기와 이슬에 젖을진저,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하세요,
잊고 싶으면 잊으세요.
나는 어둠을 볼 수 없겠지요,
비를 느낄 수 없겠지요,
고통스러운 듯 울어대는
나이팅게일도 들을 수 없겠지요.
뜨지도 지지도 않는
어스름 빛 너머로 꿈꾸며,
어쩌면 나는 기억할 거예요,
어쩌면 나는 잊을 거예요.
원 제목이 ‘Song’이지만, 1행을 딴 ‘When I Am Dead, My Dearest’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8살 때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시(하지만 32살 때 나온 첫 시집 ‘고블린 시장과 기타 시들’--Goblin Market and Other Poems에 발표됐다)는 로세티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애송되는 편에 속한다. ‘When I am dead’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물론,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1이 떠오른다. 장미의 붉은 빛, 사이프러스의 침침함, 푸른 잔디에서 색채의 대비도 돋보인다. 장미는 사랑을 의미한다.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는 주로 무덤가에 심는 침엽수다. 어두운 색조 때문에 슬픔, 비탄을 상징하고, 한번 잘리면 다시는 자라지 않기에 죽음을 의미하게 됐다. 장례식 목재로도 사용된다. 나이팅게일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새로 기쁨, 음악, 불멸과 관련된 상징이었다. 로세티는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기쁨이 아니라 고통과 연관시킨다.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스무 살 무렵에 두 번 결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으며, 세 번째 남자가 나타났을 때 그녀는 이미 결혼생활에 기대를 걸지 않는 상태였다.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평온하게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것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시에서 죽음의 세계와 삶의 세계가 명확한 선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스름 빛’으로 옮긴 영어 ‘트와이라이트(twilight)’는 해가 뜰 무렵이라면 ‘여명’이고 해가 질 무렵이라면 ‘박명’이겠지만, 시인의 말대로 “뜨지도 지지도 않는” 빛이기에 단지 ‘어스름 빛’일 뿐이다. 이 ‘어스름 빛’은 그녀에게서 죽기 전의 삶과 죽은 후의 삶을 동시에 요약한다. 그녀에게는 삶에 기대하는 것이 없는 만큼 죽음에도 기대하는 것이 없었기에 그 슬픔에는 원한이 없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시의 말은 감상적인 언어를 넘어서서 관조적인 언어가 되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Georgina Rossetti, 1830~1894)는 영국 런던에서 부모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아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탈리아 중부 지방 아브루초에서 런던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이탈리아 시인 가브리엘레 로세티다. 어머니는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퍼시 비시 셸리의 친구이며 내과 의사·작가인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여동생 프랜시스 폴리도리다.
두 오빠와 언니 모두 시인·작가이거나 화가여서 문학과 예술에 둘러싸여 자랐다. 큰 오빠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는 빅토리아 시대 후기 예술가들의 문예 운동인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를 결성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끈 화가이자 시인이었다. 둘째 오빠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와 언니 마리아 프란체스카 로세티는 작가였다.
로세티는 어릴 때부터 집에 있는 장서에서 르네상스 문인 단테, 페트라르카를 비롯한 이탈리아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 그의 집에는 이탈리아 학자, 예술가, 혁명가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자연스레 진보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며, 일찍부터 시대에 앞서가는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오빠 단테가 시를 지어 발표하도록 권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열두 살 되던 해부터 시를 지었고, 열여덟 살 때 ‘아테나 신전’(Athenaeum)에 첫 번째 시를 발표했다. 스무 살 때인 1850년 ‘엘렌 앨런’(Ellen Alleyne)이라는 필명으로, 라파엘 전파가 간행하고 오빠 윌리엄이 편집을 맡은 문학잡지 ‘기원’(The Germ)에 7편의 시가 실렸다.
서른두 살 때 그녀의 첫 시집이자 가장 유명한 시집인 ‘고블린 시장과 기타 시들’(Goblin Market and Other Poems)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잔뜩 받았다. 이 시집으로 그녀는 당대 주요 여성 시인으로 확고히 서게 해 주었다. 1861년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부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Elizabeth Browning)이 죽은 이듬해에 나온 이 시집은, 곧바로 크리스티나 로세티를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계승자로 열렬한 환호를 받게 했다. 시, 동시, 종교시, 설교문, 논설문에 뛰어난 재주를 보인 로세티에게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 찰스 스윈번(Charles Swinburne) 같은 시인들이 찬사를 보내, 훗날 암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테니슨의 뒤를 이을 계관시인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로세티가 열네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병을 앓아 킹스 칼리지 교수직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어머니는 밖에 나가 교사로 일했다. 그녀의 언니도 입주 가정교사가 되어 집을 나가고 낮에 홀로 남은 로세티는 고독을 견디지 못해 신경쇠약에 걸려 학교를 그만두었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로세티 집안의 여자들-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로세티는 영국 성공회에 심취했고, 이후 그녀의 인생에서 종교적 헌신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일하러 가거나 공부하러 학교에 간 어머니, 언니, 오빠들이 없는 집에서 로세티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독서와 사색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 독신 여성 시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평범한 삶을 영위한 보통 사람들보다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숙고해 보고 시를 쓸 수 있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에게는 세 명의 구혼자가 있었다. 첫 번째, 오빠 친구인 화가 제임스 콜린슨(James Collinson)과 10대 후반에 약혼했으나 종교적인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다. 로세티는 약혼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자 파혼을 선언했다. 14년 뒤 아버지의 옛 제자인 언어학자 찰스 케일리(Charles Cayley)가 청혼했으나, 거절한 것도 그에게 아무런 종교적 신앙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1883년 케일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친구로 지냈다. 세 번째 구혼자인 화가 존 브레트(John Brett)가 나타났을 때 그녀는 이미 결혼생활에 기대를 걸지 않는 상태였다.
에밀리 디킨슨((Emily Elizabeth Dickinson)처럼 로세티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혼자 살던 로세티의 생계는 오빠 윌리엄이 챙겨주었다. 오십대에 이르러 가정교사를 꿈꾸던 로세티는 고통스럽고 보기 흉한 그레이브스병(안구가 돌출되는 갑상선 질환)에 걸려 가정교사의 꿈을 접고 집안에 틀어박혀 종교적인 시와 산문을 썼다. 1893년에는 유방암에 걸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그 이듬해에 재발해 결국 1894년 12월 29일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18세에 ‘내가 죽거든’으로 시작하는, 자신의 묘비명 같은 시(공식 발표는 32살 때 나온 첫 시집 Goblin Market and Other Poems에 했다)를 쓴 사람치고는 오래 살았다.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20세기 들어 모더니즘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70년대 페미니즘 학자들에 의해 재평가되어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조명되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고독과 병고에 시달리면서 종교적 절제 속에서 죽음의 시를 쓰며 일생을 보냈다. 이런 그녀에게 시 쓰기는 힘겨운 삶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 주는 친구였으며,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애인이었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공표하는 대변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당대의 남성적 시각의 검열을 교묘히 피하면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자신의 세계를 은밀히 내세우는 방법을 썼는데, 이는 그 자체로서 새롭고 혁신적인 시 기법이었다.
그녀는 시에서 대체로 삶에 대한 거부를 드러낸다. 그녀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뿐더러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리라. 여성으로서 억압된 삶을 살아야 하고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사랑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이 세상은 그녀가 존재하고 싶지 않은 세계다. 그의 작품 중의 연애시의 대부분은 좌절된 사랑의 기록이다.
죽음은 그녀가 즐겨 다룬 주제다. 삶과 죽음, 세상과 인간, 그리고 많은 사물들에 대해 치열하게 숙고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각기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그녀에게 죽음은 유한한 모든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독신으로 살아가며 시를 쓰고, 사랑의 아픔을 경험하고, 폐결핵, 협심증, 그레이브스병, 암 등 많은 질병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죽음은 그 어느 시인보다도 끊임없이 명상해야 할 크나큰 주제였다
그 외 시 3편
1
Remember me when I am gone away,
Gone far away into the silent land;
When you can no more hold me by the hand,
Nor I half turn to go yet turning stay.
Remember me when no more day by day
You tell me of our future that you plann’d:
Only remember me; you understand
It will be late to counsel then or pray.
Yet if you should forget me for a while
And afterwards remember, do not grieve:
For if the darkness and corruption leave
A vestige of the thoughts that once I had,
Better by far you should forget and smile
Than that you should remember and be sad.“
제가 떠나거든 기억해 주세요.
제가 침묵의 나라로 저 멀리 떠나거든요.
당신이 제 손을 더 이상 잡을 수 없고
돌아서려던 제가 다시 돌아서 머물지 못할 때.
절 기억해 주세요. 계획해둔 우리의 앞날을
당신이 제게 더 이상 말해 주지 못할 때.
그저 기억해 주세요. 당신도 아시겠죠
그때 가서 하소연하고 기도해야 늦다는 걸.
하지만 혹시나 한동안 잊었다
나중에 생각났다 해도 슬퍼하진 마세요.
어둠과 타락이 한때 제가 지녔던
생각의 흔적을 남긴다 해도
당신이 절 기억하고 슬퍼하기보다는
잊어버리고 미소 짓는 게 훨씬 나아요.
이 시는 14줄로 구성된 약강5보격, 이탈리아 소네트 형식으로 쓰였다. 다수의 영문학자들은 이 소네트가 로세티가 먼저 죽을 경우 케일리를 위해서 썼다고 분석한다. 시 전체에 걸쳐 ‘remember’라는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한다. ‘silent land’는 죽음의 상징한다. 이 시는 로세티의 죽음에 관한 시편 중에서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첫 구절부터 사랑과 죽음의 주제로 시작이 되고, 이는 마치 삶에서 사랑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 같은 존재라는 것이 시 전체에서 잘 드러난다.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음을 보여준다.
2
Who Has Seen the Wind?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I nor you: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The wind is passing through.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you nor I:
But when the trees bow down their heads,
The wind is passing by.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요?
나도 당신도 아니어요:
그러나 잎새가 떨릴 때,
바람은 지나가고 있어요.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요?
나도 당신도 아니어요:
그러나 나무가 머리를 숙여 인사할 때,
바람은 지나가고 있어요.
1872년 무렵에 쓴 시다. 로세티가 자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컸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시(短時)다. 군더더기라고는 한 단어도 들어있지 않은 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나무 잎사귀가 흔들리는 것에서 바람을 본다는 이 시의 단순성과 날렵함이 돋보인다. 여러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유럽과 미국 등지의 학교에서 애창되고 있다. ‘passing through’는 ‘통과하다’ ‘관통하다’는 뉘앙스가 강하고, ‘passing by’는 ‘곁을 지나가다’ ‘지나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지극히 단순하고 일상적이며 순진한 대화로 시작되는 1연의 1행과 2행은 단순한 외부의 현상과 인간의 감각행위에 관한 이야기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고 바람 자체는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1연의 3행과 4행에서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그 사이로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정신작용,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2연의 3행과 4행에서 나뭇가지가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화자는 바람이 그 곁으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또는 감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는 뜻이다.
3
What are heavy? sea-sand and sorrow:
What are brief? today and tomorrow:
What are frail ? Spring blossoms and youth:
What are deep? the ocean and truth.
무엇이 무거울까? 바다의 모래와 슬픔이.
무엇이 짧을까? 오늘과 내일이.
무엇이 약할까? 꽃과 젊음이.
무엇이 깊을까? 바다와 진리가.
짧은 시이지만, 삶을 성찰하는 깊이가 드러나는 시다. 구체적인 사물과 추상적 상징을 연결하여 시인의 생각을 전달하려 한다.
'시, 시인, 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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