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아트

툴루즈 로트렉 (2) -화장

카르미나 2019. 9. 13. 13:01










 

갈색머리 여자혹은 화장, 툴루즈 로트렉, 유화 1896(?),

 

조그만 크기 (64 cm x 54 cm)의 이 화폭은 1890년 브뤼셀 전시회에 갈색머리란 제목으로 출품한 작품이다. 몇 달 후 로트렉은 등을 드러내고 바닦에 앉은 갈색머리 여인이라고 편지에 쓴 적이 있다. 이로보아 이 작품은 세간에 알려진 1896년이 아니라 1889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다갈색 머리 여인은 로트렉이 특히 자주 다룬 주제중 하나이다. 다른 화폭에도 등장한 로트렉 화실에 익숙한 등나무 의자가 이 뎃셍에도 보인다,

이전의 회화(특히 고전주의)에서 누드는 신화적 주제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매개였을 뿐이다. 그러다 쿠르베에 이어 드가가 파스텔 시리즈로 화장하는 여인들을 그리면서 하나의 혁명을 예고했다. 이 작품에서도 로트렉이 드가에 매혹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굳이 말하자면 누드에 속한다. 그러나 전혀 아카데믹하지 않고 구체적인 모델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림을 보자마자 독자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여자를 인지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그 다음을 생각하면 어떤 유동성을 감지한다. 즉 이 그림은 매우 빠른 의미의 유동성을 그 본질로 한다.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울 것이다. 달리 애기해보자. 로트렉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모델이 하나의 포즈를 취하는 찰나적인 순간이다. 그런데 이 순간은 화가에게는 그의 전체 삶( 적어도 그가 여성에 대해 갖고 잇거나 느끼는) 의 순간이다. 한 여인의 몸(그것도 극히 작은 일부분)을 그리고 있지만 주제는 육체가 아니라 그 여자 자체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일상적인 여자가 아니라 로트렉 자신의 의식 속에 들어있는 구체적인 여자인 것이다. 로트렉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의 초상을 그리는 재료이며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이 여자는 분명 몸과 얼굴을 가진 특별한 한 여인이다. 회화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모델 역할을 하는 구체적인 한 여인인 것이다. 물론 그녀는 몸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아주 작은 부분, 그것도 희미한 등과 가는 다리가 전부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다갈색 여인을 완벽하게 통째로 느낄 수 있다. 로트렉은 등을 그린 것이 아니라 한 여인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그는 마네의 추종자이다.

 

이제 이 거친 뎃셍에 덧칠을 조금 해보자

 

이 여자는 막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그 순간 여인의 육체는 더 빛나고 육감적이다. 피부는 화가를 매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신선하다. 화폭 상단에 욕조가 보이고 이 욕조는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다갈색 머리의 여인 그래서 그 육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바닦에는 늘어진 타월, 어쩌면 그 여인의 속치마가 늘어져 있고 왼편에 등나무 의자가 있고 그 위로 장미색 드레스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다. 맞은편에는 또 다른 등나무 의자가 있고 위에 아무것도 없지만 그 의자는 매우 분명해 보인다. 그 의자 건너서는 불분명해 보이지만 양탄자 위로 침대 시트 커버처럼 보이는 천들이 있다.

 

화가는 이 뎃셍에서 다소 독특한 시점을 취하고 있다. 위에서 그리고 약간 치우친 측면에서 대상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영화감독처럼 한정된 공간을 삼각형구도로 설정해 대상 속으로 파고드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이 이 화폭이 주는 의미의 유동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즉 인물은 삼각구도 안에 위치하는데 여인의 등을 하나의 수직선이라고 생각하면 이 선은 두 개의 각과 연결된다. 하나는 다리와 몸으로 구축되고 다른 하나는 팔과 토르소(상반신 물론 가슴은 보이지 않는다)로 이어지는 각을 형성한다. 비스듬한 대각선을 척추선을 구축하며 여기서부터 이 구조의 유동성이 발생한다.

 

이 화폭에서 독특한 또 한 가지는 바로 마티에르와 형태에 있다. 보통 누드를 표현할 때 화가들은 살갖의 색체를 강조한다. 예컨대 마네는 올렝피아에 상아빛 피부를 부과했다. 흥미롭게도 로트렉은 - 우리는 그가 신체적 장애, 특히 뼈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화폭에서 마티에르와 뼈의 형태를 환기한다. 이 점은 로트렉의 다른 그림인 Seule에서도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골격 구조가 잘 짜여져 있지만 결코 무겁지는 않다. 섬세하고 가날프고 때로는 무척 복잡한 느낌을 갖게 한다.

 

예술의 본질이란 현실을 충실하게 모사하는 데 있는 것 아니다. 현실을 충실하게 모사하는 것이라면 사진 이상 가는 미디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라도 한 장의 사진이 현실의 본질을 말해주지 못한다. 왜냐면 현실이란 대개의 경우 불투명한 특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밖으로 드러난 외관으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예술이란 현실을 암시하는 기호들의 총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작품의 가치와 의미는 그 기호들을 해독하는 관찰자의 역량, 혹은 취향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화장은 화가가 세상(여기서는 여성)에 대해 갖는 하나의 견해 내지는 세계관을 드러내 주는 걸작이다. 그는 아주 수줍고 치밀하고 자신의 여성관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은밀한 작품이다. 그는 여기서 여성에 대해 갖는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욕조에서 갓 나온 젊은 여인의 등을 다 드러낸 뒷모습을 표현한 이 뎃셍은 젊은 여인의 은밀한 내면의 감정의 동요를 말하는가? 수줍은 에로티시즘인가? 가늘고 여린 뼈를 덮고있는 푸르스름한 조명, 창백한 피부, 마치 소년의 습작처럼 커다란 목욕 타월 밖으로 드러난 다소 거친듯 보이는 터치. 피는 듯 시든 듯 보이는 꽃, 다갈색 머리, 화병.... 뭐라 말하기 힘든 형태의 연금술이 있다.

욕조에서 갓 나온 모델을 등장시키지만 그 순간은 대상, 그러니까 여성을 에로틱화() 하는 순간이 아니라 물에서 갓 나와 자연스런 빛과 접촉하는 순간의 육체를 포착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유동성 (욕조에서 나와 빛으로 이동하는)이 말없는 감흥을 이끈다.

 

여기까지는 어쭙잖은 비평의 글이다. 나는 절대 비평가가 아니고, 될 수도 되고 싶지도 않다, 비평가들이란  예술이나 작가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면서 입만 놀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한 직업이다. 문제는 그딴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외한인 나도 여기서 조잘거리고 있지 않은가 !

 

그래서 여기서는 다른 각도에서 보다 서민적(?)으로 감상해보고 싶다. 반복하지만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어느 한 개인의 표현의 산물이고 그 개인의 경험이다. 단 관객이 포착하는 그 경험은 작가인 예술가의 경험을 자신(관객)의 경험에 비추어서, 그 한계 내애서만 포착될 수 있는 경험이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 없다. 한편의 영화를 보거나 음악 한 곡을 듣거나 맨 처음 그리고 감상을 마치고 돌아서서 나올 때 떠오르는 감상에 주목하면 된다.

 

 

해석 1

 

그녀의 이름은 혜라다. 얼마 전 사랑하는 애인이 그녀를 떠나버렸다. 몇일 후에는 어려서부터 그녀에게 오래 동안 집착해 왔던 돈많은 먼 사촌과 결혼해야 한다. 혜라는 다정하게 감싸주던, 떠나버린 애인의 팔을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그 때의 감상에 젖는다. 가볍게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고 그녀는 혼자서 텅 빈 방안에 홀로 앉는다. 주변의 널린 사랑의 잔재들을 응시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그녀 앞에는 조그만 푸른 욕조, 희미한 커튼, 사랑을 나누던 등나무 의자. 방문할 때 들고 왔던 시든 꽂다발, 그녀는 당장 씻기를 주저한다. 왜냐면 그 냄새들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것은 안 될 일이다.

이제 몇 발짝 물러나야 한다, 기억으로부터 ....

 

2.

미라는 나이트클럽 댄서다. 지난 밤 공연 리허설을 하다가 발목을 삐었다. 아무도 눈치재지 못했지만 저녁에 미라는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발이 아팠다. 스타킹을 내리고 발목을 맛사지했다. 원룸의 푸른 욕조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지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해졌다. 27살이 된다. 그 생각을 하자 더 우울해졌다. 자신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도 해보았다. 댄서? 그것은 직업은 아니다. 어머니가 한 말이다. 이것은 삶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나? 매일 밤 장미꽃을 들고 대기실을 들락거리는 부동산 업자중 아무나와 결혼할까? 그 사람의 애를 낳아줄까? 평범한 다른 모든 여자들처럼? 미라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다. 친구인 세라가 생각났다. 그녀는 화가들의 모델이다. 그거라면 위험성도 적고 발목을 삐지도 않을 것이며 마음이 괴롭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데 어는 화가가 나를 써줄 것인가? 27살의 처녀는 그런대로 괜찮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근육만 남아 빈약한 허벅지에 초등 생 가슴, 중딩의 히프를 가지 여자를 누가 ? 쓴 웃음이 나온다.

 

 

3.

 

마들렌느는 몽마르트 포목점 집 딸이다. 어느 일요일 로트렉은 그녀에게 일요일 자신을 위해서 하루 모델이 되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제기랄 !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다. 하기사 화가들은 모두 난봉꾼이며 아틀리에서 발가벗는 것이 처녀의 평판에 누가 된다는 것이 상식이었을 시대니... 게다가 로트렉은 유명한 화가이긴 하지만 ....

로트렉은 집으로 돌아왔다. 실망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일종의 분노도 느꼈다. 목탄더미를 집어들고 몇 개의 크로키를 휘갈겼다. 그 다음 그것을 뎃셍으로 그렸다. 등돌린 마들렌느를 그렸다.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거절해버린 마들렌느. 마들렌느는 완강한 등만큼이나 고약하다. 욕조근처에 온갖 잡동사니 옆에 그녀를 그려넣었다. 아마도 그녀는 모욕당했다고 생각해 욕조에서 북북 씻었을 지도 모른다. 그 정숙한 체하는 마들렌느, 도톰한 입술에 뼈가 조금 드러날 듯한 체격의 회색 눈을 가진 마들렌느가 밉다. 그렇지만 그녀가 정숙하다는 소문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녀에겐 잘된 일이다.

 

 

 

4.

 

오르세 미술관, 화장이 전시된 방으로 한 커플이 들어왔다. 여자는 그림 앞에 턱하고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람들을 밀쳐낸다. 남자는 캡션을 유심히 읽는다.

 

이 그림은 1896년이 아니라 1899년에 그려진 것이다. 화가가 좋아했던 드가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화폭 속의) 이 여자도 드가가 그랬던 것처럼 댄서였단 말이야?”

 

, 확실하지는 않지, 내 생각으로는 아무튼 또 하나의 매음굴 그림이지 뭐.”

 

사창가 말이야>”

 

아마도 그럴거야, 로트렉은 평생을 창녀 집에서 보냈잖아.”

 

아마도 그의 신체장애로는 ,, 확실하지는 않지만이라고 여자가 동의했다.

 

커플은 한참을 킥킥거리며 웃다가 마침내 방을 나갔다. 그제서야 당신에게 화폭을 정면으로 바라볼 기회가 왔다.

 

창녀라니, 젠장 ...” 미술관의 그림 앞에서 그림 속 여인에게 수천 가지 신분을 부여 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이 여자는 그다지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5

 

가난한 집 딸인 유라는 돈 많은 늙은 신사와 결혼했다. 그는 유라를 안아주지 못한다. 유라는 오페라를 좋아한다. 챈트 가정교사와 은밀한 관계를 맺었다. 아니 가정교사는 그냥 잠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진짜로는 그녀는 유명한 시인의 정부다. ..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다.

 

그 다음은 알아서 써보세요 ...